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그는/정호승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깍아 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 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
바로 너에게 보내는 일이다
그렇다 꽃대는
꽃을 피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든다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 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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