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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한민국의 중년여성! 그들은 누구인가?

걷는 즐거움 2007. 2. 6. 13:51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성들이 더 심해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자신의 나이를 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십대 후반을 넘기면서 이런 조짐이 일어나는데, 이때부터 자신들은 늙었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젊음이 주는 아름다움은 분명 있다. 젊다는 것 자체만으로 아름다움이다.


유독 여성들만 이십대를 정점으로 늙음을 부여함은 여성의 미를 성적으로만 고착화 시키려는 남성중심사회의 음모다. 이를 여성도 생각 없이 따라한다. 인간에게는 젊음에 대한 미뿐 아니라 원숙미라는 것이 있다. 이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스스로 가치도 두지 않는다. 중년의 여성에게는 분명 원숙미가 있다.


각종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중년여성

대표적인 것이 착한여자 콤플렉스다. 이도 남성중심사회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추구한

음모다. 현모양처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엔 여성의 정체성이란 없어야 한다.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학력 콤플렉스가 단연 일등이다. 그래서 끼리끼리 몰려다닌다. 20년도 넘은 과거에 나온 대학이 대체 중년여성에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 시대에 학력에 관한 콤플렉스가 없는 여성은 부모에게 깊이 감사를 해야 한다. 지금의 중년여성이 대학에 간다는 일은 당시엔 아주 축복받은 일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여성들이 늙은 부모나 남편을 더 원망하고, 닦달한다. 자신의 몸값에 상응하는 생활이 주어지지 않으면 몹시 괴로워한다. 미녀들의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위 두 가지 콤플렉스는 남편과 자녀에게 과도한 집착을 불러온다. 한동안 아버지에 기댔던 마음을 남편과 자녀에게 쏟는다. 한동안 남편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다 제풀에 지친다.

아이를 집안에서 끈으로 묶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아이가 불쌍하다고? 웃기는 소리다. 보이지 않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자녀의 영혼을 묶는 끈도 있다. 차라리 상징적 퍼포먼스처럼 끈으로 몸을 묶는 편이 인간적이고 더 낫다.


네 가지 부류의 중년여성

공주형, 하녀형, 쟁취형, 자포자기형이 있다. 이는 서로가 대치되는 것인데 여성은 남자의 분류 보다는 복잡하지 않다. 자기희생적면이 남자보다는 강해서다.


공주형은 대한민국 중년여성들 중에 두 번째로 많은 집단이다.

보기 드문 경우이지만 어려서부터 중년까지 공주 신분을 줄 곧 유지해온 여자들이 나약하다고 하면 오해다. 물론 그녀들의 심상 중에는 꼭지가 덜 떨어진 면이 있기는 하다. 아내들이 남편과 싸움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절규에서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나를 언제 호강한번 시켜줘 봤어”

호강을 누려온 여성은 분명 다르다. 위기 상황을 만들지도 않지만, 위기가 와도 그동안 축적된 힘으로 이를 잘 극복한다.


어릴 때는 공주였는데 결혼하고 무수리가 된 경우는 참 힘들게 산다. 과거의 영광을 과대 포장하는 습관이 생기면 더 어려워진다. 자신의 일상 속에서 만족감을 찾기가 어렵다.

남자들은 공주를 맞이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룰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신이 왕자의 기질 없다면 확실한 하인이 되어야 한다. 밤에 대책 없이 집을 나와서 헤매는 여자 중에 왕도 아닌, 하인도 아닌 이상한 놈에게 쫓겨난 여자들이 많다.


반대로 전혀 공주적인 삶을 살지 못하다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거나, 자신의 노력이 자연스럽게 더해서  어느 날 공주가 된 경우를 운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녀의 속에는 공주의 피가 흘렀다고 봐야한다. 왕자를 보는 해안을 가졌거나, 스스로 독립한 여왕이다.

신분은 공주인데 전혀 공주 기색을 보이지 않는 여성은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흡입력을 느낀다.


가짜공주과도 있다. 그녀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쉽게 들통 나는 거짓말을 자주 해서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 못한다. 이들 중에 뛰어난 화술로 계를 조직하고 어느 날 야밤에 도주하는 여성들이 있다.


하녀형은 자포자기형와는 전혀 다르다. 그녀들은 도통 삶의 전반에 걸쳐서 온전한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자신의 존재를 늘 아래에 둔다. 알아서 기는 것은 물론 자신의 여건이 조금이라도 허락되면 열심을 내지 않아도 될 때에도 오버를 하는 성향이 있다. 이는 자신이 대접을 받기 위해서지만 정작 주변에서 점점 천덕꾸러기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녀들은 자존감이 부족해서 남이 조금만 칭찬을 해도 감복한다.


이런 여성을 부려먹고 사는 대한민국남자들이 많다. 자신은 천당에 살고 있다고 생각 할지 모르나, 예견된 지옥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내를 그저 부엌때기로 만들어서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 자꾸 꼬여가는 것을 그 때문인지 모르고 아내만 몰아세운다. 그들이 하는 말은 다 똑 같다. “집구석이라고는...”


쟁취형 여성은 매사가 전투적이다. 그녀들의 언행은 거칠게 마련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쏟아 붓는다. 생활력은 강해서 가족을 다 먹여 살리기도 한다. 감성적인 패배주의자 남성에게 남다르게 이끌리는 여성이다. 어머니가 너무 강하면 자녀들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이는 딸보다 아들이 더 심하다. 무능한 남편을 자주 구박은 해도 내쫓지는 않는다. 내 손을 떠나면 사람 구실 못 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같은 여성들 사이에 칭송도 받지만 회피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자포자기형 여성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중년여성들이 속한다. 그냥 자포자기가 아니라 자신은 ‘초월적 자포자기’라고 한다. 그래서 고고함이 조금 남아있다. 이는 마지막 남은 자존감이다. 이 집단에 좌절한 공주 과들이 많이 모여 있다. 비교적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많다. 쟁취형 여성은 애초에 이곳에 머물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취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신경이 쓰이는 모임 외에는 평상시 도무지 가꾸려고 하지 않는다. 게으름보다는 이 나이에, 이 얼굴에 뭘 한다고 하면서 포기한다. 반복된 일과에 대한 무기력감을 호소 할 곳도, 현실적으로 타계 책도 없어서 포기를 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늘 내제된 마음속에 불끈거리는 것들이 있다. 남편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다.

내 신세를 망친 원수니까. 그 원수를 위해서 자신을 가꾸는 일은 기꺼이 포기한다.


이 부류의 여성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많은 어려움을 예견하고 있다. 이미 사회적인 고립은 진행되었고 집안에서도 점점 고립이 된다. 자녀들이 성장할수록 심화된다. 그녀들은 하녀형과는 편해서 어울리기는 하는데 속으로는 경멸한다. 따라서 하녀형 같은 자존심 상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의 일시적인 지지도 받아 내기 어렵다. 쟁취형여성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애초에 어울리지 못한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근근이 해 나간다.


무대책 자포자기형은 안타깝게도 자포자기형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여성이 속한다. 자신의 삶속에서 의미나 감동을 찾을 수 없다. T.V드라마 말고, 자신의 생활속에서 감동을 받은 기억이 아련하면 이 집단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남편에 대한 기대도 자녀 교육도 거의 포기 단계에 와 있는 아주 무기력한 여성들이다. 이들 중에 그나마 신앙에 기대여서 근근이 살아가는 여성들이 많다.


생활고에 늘 시달려 온 여성이 의식을 올리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는 것 같아도 그렇지 만은 않다. 인터넷에 발달로 공부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럭셔리한 삶을 산다는 강남의 부유한 유한마담들 보면 허망과 회의가 짖게 깔려있다. 그래도 좋으니 럭셔리하게 한번 살고 싶다는 여성들이 많아서 큰일이다.


중년의 여성은 자신의 의식 수준이 어디에 와 있으며 어느 단계에서 정체되었나를 스스로 살펴야 한다. 이를 혼자 살필 수 없다. 살피는 방법은 오직 공주(공부하는 주부)밖에는 없다.

  

중간에 낀 세대인 중년여성

시댁의 억울함을 고스란히 받아 온 중년여성은 ‘시댁의 굴레’라는 막차를 탄 것이다. 아들만 있는 여성은 각오해야 할 일이 있다. 예전에 자기 받았던 시댁의 억압을 조금이라도 흉내를 내면 신세대 며느리에게 치받일 것이다. 자기라면 감히 꿈에도 꾸지 못할 일 벌어 질 일이다. 이에 아들을 쇄뇌 시키려고 한다면, 죽을 때가지 아들과 손주 새끼를 돌봐야 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오늘날 시댁의 억울함을 모르고 지낸 중년여성은 큰 축복이다.

그런 여성은 며느리에게도 억압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시댁에 이를 가는 억울한 여성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남자! 니들은 정말 알가도 모를 존재다.

아이들처럼 대놓고 징징거리면 원하는 것을 해결 해주는데, 뜬금없이 발작적으로 하는 것이나, 애들처럼 삐지는 것을 보면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는 아내가 남편의 어머니의 역할을 해준데도 원인이 있다. 애 어른을 키운 일이다. 그런 것을 요구하면 일단은 들어주고는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다.


애들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는 어느 때는 야수 같은 권력자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남자들의 뒤틀린 심성의 가장 큰 원인은, 정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권의주의 사회구조에서 억울하게 벌어먹고 산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를 풀 때가 술과 도박, 가족을 팽개치는 취미생활과 마누라와 애들을 닦달하는 짓 밖에는 없다.


나도 이제부터 내 인생을 챙겨야겠어!

아이 둘을 키우려면 10년 동안 밑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동안 살림에 찌는 아내에게 남편은 자유로움이라는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한다.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아내를 자기 곁에 붙잡아 두려는 속성이 있다. 잘 해주면서 그러면 누가 뭐라고 하나! 가끔 정이 똑 떨어지게 하면서 그러니 속상한 일이다.


아내의 의식을 올리는 것이라면 돈과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그래야 자신의 노년이 더 편하다. 이를 못하는 것은 아내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같이 허접한 인간에게 여지 것 속아 살아온 여자라고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중년의 여성 자신도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더 이상 남편에게 기대는 마음을 접고 세상에 뛰어 들어야 한다. 꼭 돈을 벌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시간과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자녀들이 커가면서 어머니의 수를 다 읽으면 정말 어려워진다.

단 사회 봉사활동에 몰두는 권하고 싶지 않다. 선한 행동을 베풀면서 오는 자기 만족감은 크나, 가정을 온전히 지켜온 중년여성이라면 할 만큼의 봉사는 다 했다고 본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하는 봉사행위는 이상한 심성을 만들 수 있다.


봉사 활동은 모든 면에서 좀 여유가 있는 여성들에게는 적극 권한다. 문제는 이런 여성은 대체로 돈 쓸 시간도 부족해서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다.


신혼 때 가족계획을 자녀의 숫자와 태생연도만을 할 것이 아니라 자녀의 양육을 끝낸 시점에서 아내를 재충전 할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었으면 한다. 이게 노후 준비의 기반이다.

출처 : 샬롬
글쓴이 : 두 아들 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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