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스크랩] 맛있는 보약, 된장

걷는 즐거움 2009. 10. 26. 12:00

맛있는 보약, 된장

세계일보 2007-11-30 1


◇메주와 첼리스트의 된장
시골이 고향인 사람이라면 구수한 콩 삶는 냄새가 그리워질 때다. 대가족이 함께 사는 시골집은 11월 말에서 12월 초가 가장 바쁘다. 온 식구가 겨우내 먹을 김장은 물론, 일년 내내 먹을 장 준비에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수확한 햇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내년 봄에 띄워서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이면 늘 먹는 된장·간장이어서 아무 때나 만들 수 있는 것 같지만, 이때를 놓치면 맛있는 장을 만들 수 없다.

 메주를 띄우고 된장을 만드는 일은 도시인들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맛있는 장을 잘 고르고 잘 끓이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맛있는 장은 어떤 것인지, 맛있게 끓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봤다.


# 찾아서 먹어볼까, ‘된장 명소’ 5곳

된장을 직접 담글 수 없다면 맛있는 된장을 찾아 사면 된다. 1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의 장 만드는 곳을 돌아보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 된장의 달인들’(지오북)을 펴낸 푸드 칼럼니스트 이진랑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장독대를 돌보고 정성을 다하는 게 장맛의 비결”이라며 정말 맛있는 된장을 만드는 ‘된장의 명소’로 수진원, 메주와 첼리스트, 제비원, 성원식품, 호산죽염식품 5곳을 추천했다. 


경기 양평의 수진원(031-773-3747)은 전 말표산업 회장인 고 정두화씨가 낙향해 만든 곳. 장맛의 90%를 좌우한다는 콩을 직접 기른다. 농약을 치지 않고, 직접 농사 지은 콩으로 만들 수 있는 만큼만 장을 담근다. 이 콩과 천일염, 물만으로 장을 담그는데 된장은 2년, 간장은 5년이 지나야 판매한다. 된장은 생생하고 순박한 맛이며, 간장은 색과 향이 진하고 맛이 달착지근하다.


강원 정선의 메주와 첼리스트(033-562-2710)는 스님과 첼리스트가 결혼 후 된장을 만들면서 유명해진 곳. 햇콩은 물론, 해남 천일염과 봄눈 녹은 물을 사용한다. 맑은 공기를 마신 이곳의 된장은 다른 된장에 비해 짙은 색을 띠며, ‘시골 된장 맛’의 깊은 맛을 낸다. 경북 안동의 제비원(054-841-2778)은 안동김씨 예의소승공파 30대 종부가 장을 만드는 곳. 무쇠 가마솥에 콩을 삶아 절구에 으깨고 목화솜 이불을 덮어 띄우는 재래식을 고수한다. 조선시대 종가의 세련된 장맛을 그대로 되살리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수진원의 장이 익어가는 모습.(왼쪽)◇보성 녹차된장.


전남 보성의 성원식품(061-853-3529)은 이 지역 특산품인 녹차를 사용한 녹차된장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녹차와 콩을 섞은 것이 아니다. 둘의 만남이 얼마나 인체에 이로운지, 냄새는 얼마나 제거되는지, 녹차가 발효를 방해하지는 않는지 등의 연구를 거쳐 탄생했다. 녹차된장은 특유의 된장 냄새가 덜하고, 뒷맛이 짜지 않다. 또 녹차가 장의 고소한 맛과 단맛을 살려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맛을 낸다. 충북 괴산의 호산죽염식품(043-832-1388)은 죽염과 옻샘물을 사용해 몸에 좋고 독특한 맛을 내는 된장을 만든다. 옻나무 숲 옆에 있는 옻샘의 물은 위장병과 피부병, 염증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일반 소금이 아닌 죽염으로 만든 된장은 많이 먹어도 갈증이 나지 않고 구수한 맛이 강하다.

이 같은 ‘명품 된장’에 관심이 있다면 이들 된장 명소를 관광차 찾아가서 장 담그는 모습을 구경한 후 구입하는 것도 좋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장을 주문할 수도 있다. 
◇산죽염식품에서 내놓는 된장찌개 상차림.



# 장을 맛있게 끓이려면

장맛이 찌개 맛의 90%라지만, 장만 맛있으면 될까?

“아무리 해도 엄마가 끓여주던 그 맛이 안 나요.” 젊은 여성이라면 꼭 한 번은 호소했을 법한 말이다. 된장찌개는 어느 집에서나 먹는 흔한 메뉴지만, 맛이 모두 다르고 끓이는 방법도 다 다르다. 유명한 요리 전문가의 책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해도 맛이 안 나는 이유는 뭘까. 답은 ‘경험’과 ‘손맛’이다. 그러나 경험이 없다고 맛있는 장을 끓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장류 전문 레스토랑 ‘찌개에감동’의 강동석 메뉴개발팀장은 “장만 잘 고르면 찌개는 90% 이상 완성”이라며 “국산 콩만을 사용해 재래식으로 만든 된장을 고르고, 재료도 신선한 것으로 듬뿍 넣으면 기본 이상의 맛은 난다”고 조언했다.

강 팀장이 조언하는 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은 어렵지 않다. 쌀뜨물과 멸치 육수를 진하게 우려내 국물로 사용한다. 된장은 오래, 청국장은 잠깐 끓인다. 채소는 납작하게 썰어 넣어 장국과 재료의 맛이 서로 스며들게 한다 등이다. 
◇제비원의 된장


청국장은 무·약간 신 김치·두부만 넣는 것이 맛있고, 된장은 감자·무·양파 등 채소를 이것저것 넣어도 좋다. 고기는 재래식 된장·청국장과 잘 어울리지 않으므로 육수는 멸치나 조개로 만드는 것이 좋다.

돼지고기와 감자 등을 넣는 고추장 찌개를 끓일 때는 단맛 나는 시판 고추장은 피해야 한다. 고춧가루·메줏가루·물엿·찹쌀 외에는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좋은 고추장으로 끓여야 텁텁한 맛이 없다. 간을 새우젓으로 하면 텁텁한 맛이 사라지고 개운한 맛이 난다.

취향에 따른 조리법도 알아두면 좋다. 걸쭉한 된장찌개를 좋아한다면 된장을 풀기 전 감자를 넣고 10분 정도 끓이면 감자의 전분이 녹아 나와 걸쭉해진다. 칼칼하고 얼큰하게 먹고 싶으면 고춧가루 대신 청양고추를 넣는다. 청국장을 자주 먹는 사람은 몸에서 요오드가 빠져나가는 현상이 올 수 있으므로 요오드가 풍부한 다시마를 넣어 먹으면 좋다.

권세진 기자 sjkwon@segye.com (사진:지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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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 된장의 달인들

 

이진랑| 이경우| 지오북| 2004.12.10

장(醬)이 익어 가는 것은 자연의 조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약은 밥상이라고 한다. 이 밥상을 채우는 우리의 찬거리 중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장(醬)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별로 없다. 모든 한국음식의 조미료이자 그 자체로 훌륭한 음식이 되는 장(醬)은 담그기가 까다롭고 번거로워 요즘은 장을 담그는 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제품으로 만들어진 장을 사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오히려 손수 담그지 않아도 어머니의 손맛이 배인 것처럼 맛깔스럽고 구수한 옛맛을 간직한 장이 있다면 불원천리라도 달려가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장맛을 내기 위해 애쓰는 전국의 장집 12곳을 찾아 몸에 좋은 천연 보약, 내 입맛에 꼭 맞는 장맛을 맛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담아냈다.


우리나라 최고라고 자부하는 전통 장(醬) 달인들의 장맛 비결

한 사람이 담가도 해마다 맛이 다르고 독마다 맛이 다른 전통 장맛. 우리 입맛에 꼭 맞는 맛있는 장맛을 한결같이 살려내는 장맛의 달인들이 말하는 비결은 따로 있다.

수진원 장은 곧 예술이고, 장은 사람의 힘 30% 자연의 힘 70%로 익는다고 믿으며 35년 동안 한결같이 고유의 전통 장 담그기에 매진해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던 왕가의 장맛을 재현.

메주와 첼리스트 마음이 우주를 만들고 마음이 첼로 소리를 만들고 마음이 된장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장독을 관중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도완녀의 장맛

파주장단 통일촌 영농조합 국산콩 중에서도 조선왕가에 대대로 진상하던 명품콩으로 만든 파주장단 통일촌 된장. 고소하고 단맛 나는 최고의콩으로 쑨 메주로 담근 장맛

보성 성원식품 각종 성인병과 비만 치료에 좋은 녹차를 넣어 담근 냄새 없고 뒷맛도 개운한 최고의 웰빙 장맛

오색옹기장 만화를 그리던 손으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펴 콩을 삶고 장을 담그는 한계령 청국장도사의 집념이 오롯이 담긴 장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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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전통발효식품, 대표적인 슬로푸드

우리나라 전통 발효음식이자 대표적인 슬로 푸드Slow Food인 장이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는 건강식품으로도 알려져 이제 세계인들도 ‘오리엔탈 건강소스’ 인 우리의 전통 된장, 간장 등 장(醬)의 놀라운 효능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된장은 고유의 전통 발효식품으로 맛도 좋지만 여러 효능들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 통한다. 최근 들어 된장의 효능에 대한 연구 결과 발표를 보면 된장은 만병통치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된장의 효능을 보면 고혈압예방, 항암효과, 간기능 강화, 노인성 치매예방,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전통 장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위대한 발명품이자 걸작품이라 할만하다.


전통 장맛 찾아 떠나는 가족나들이 길잡이

장(醬) 담기 어려운 도시의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전통 장 담그기 체험도 하고 전통 장맛도 볼 수 있는 장(醬) 나들이 길잡이. 콩을 수확해 입동 전후로 메주를 쑤는 철이면 전통 장 마을(전통장집)엔 고소한 삶은 콩 냄새가 진동하고, 한창 메주를 쑤느라 흥겨운 잔칫집 분위기다. 무르게 삶은 콩을 절구에 찧고 직접 정성어린 손길로 메주의 매무새를 다지며 어릴 적 추억에 젖어보는 건 어떨까? 전통 장 만들기 체험을 통해 자녀들에게 발효음식인 장의 우수성을 되새겨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위해 아내는 글 쓰고 남편은 사진 찍고

잊혀져가는 장맛을 되살리려 애쓰는 장맛달인을 만나보자는 의도로 처음 이 책을 기획한 것은 2003년 7월이다. 기획안을 몇 번이나 고치고 다듬은 다음, 취재 시작한 것은 같은 해 11월이고 이듬해 11월에 원고를 탈고 했다. 햇콩을 수확해 메주를 쑤는 늦가을에 시작해서 이듬해 메주를 쑬 때 끝낸 셈이다. 맨 처음 양양 오색옹기장식품 만화가의 장맛을 찾아 한계령을 굽이굽이 돌아 설악산 하늘 아래 놓인 장독대를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 12번째 군산 옹고집 장집을 취재 하고, 다시 보충취재와 책 내용 보완을 위해 꼬박 1년 걸린 장맛 기행이었다. 오직 이 책을 위해 음식 문화 칼럼이 전문인 아내 이진랑이 글을 맡아 쓰고 사진가인 남편 이경우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오랫동안 일해 온 부부답게 책에 나온 장집 12곳 외 여러 장집을 수차례 순례하는 길고 고된 여정을 이겨내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인터파크 제공]

 

수진원
'장은 곧 예술'이라고 믿는 머슴이 빚은 장맛
역사 속의 장

김천 정월농장
천혜의 메주 고을에서 곰삭은 장맛
장의 종류

메주와 첼리스트
첼로 선율에 깊어가는 도완녀의 장맛
지방별 특수장

파주 장단 통일촌 콩영농조합
궁중 진상품 장단콩으로 만든 명품장
콩 이야기

안동 제비원 전통식품
안동김씨 예의소승공파30대 종부의 자부심으로 빚은 장맛
장의 재료

나종년 농장
백운산 고로쇠 물로 담근 몸에 좋은 장
장류의 영양과 효능

보성 성원식품
초록빛 차향 담긴 기능성 건강 녹차된장
장류의 영양과 효능

아미산 샘골 메주
농민 운동가의 올곧은 집념과 시골 아낙의 손맛 담긴 장집
장 문화와 풍속

영평식품
아홉 번 구운 죽염으로 맛을 내는 전통 사찰장
건강 된장법

오색 옹기장 식품
장작 패는 청국장 도사가 빚은 최우수 장맛
전통장, 이것이 궁금해요

옹고집 장집
호박과 버섯가루에 넣어 약성까지 좋은 된장
맛 Vs 맛

호산죽염식품
영험한 옻샘물과 죽염이 녹아든 된장 아저씨네 장맛
장 담그기





바람이 분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다. 황금빛 콩잎을 떨구어낸 바람이 콩 꼬투리를 살짝 벌리고 달아난다. 벌어진 콩깍지 사이로 보이는 콩알도 황금빛인 걸 보니 이제 수확을 해도 좋겠다. 깍지 속 둥근 콩알이 여물기도 여물다. 노란 콩 한 알 한 알에는 비옥한 땅과 따사로운 볕의 손길과 바람의 노랫소리가 함께 들어 있다.
가마솥 콩 삶는 냄새 구수하다. 장작은 타닥타닥 잘도 타들어간다. 달큰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침맞게 삶아진 콩을 절구에 찧는다. 절벅궁절벅궁 절구 가락에 힘든 줄도 모른다. 치대고 보듬어 메주를 만든다. 메주가 잘 뜨도록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짚 새끼줄에 매달린 메주는 미생물들과 몸을 섞으며 황토방에서 겨울을 날 것이다.


 


정월 보름. 장 담그기 좋은 때다. 볕도 좋고 물도 깊다. 예로부터 음력 정월 말날인 오일(午日), 그믐, 손 없는 날, 병인일(丙寅日), 정일이 장 담그기 좋은 날이라 하였겠다. 메주는 노르스름한 붉은 빛을 띄고 있다. 거죽은 말라 있지만 속은 말랑말랑한 걸 보니 마침맞게 떠졌다. 미리 닦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항아리 속에 메주를 차곡차곡 담고 소금물을 붓는다. 간수를 빼 놓은 소금과 지하 암반수로 만든 소금물이다. 좋은 물은 청명일과 곡우일의 강물, 가을철의 이슬물, 눈 녹은 납설수라 했지만, 요즘 같아서야 바위가 깊을수록 물이 맑지 않겠는가.

먼 곳에 장 담그는 어떤 이는 고로쇠 물을 쓴다고도 하고 찻물을 우려 쓴다고도 한다. 물이 맑아야 장도 맑다는 걸 아는 게다. 계란이 동동 뜨는 것이 염도도 잘 맞추었다. 숯과 대추와 고추를 띄우고 뚜껑을 덮는다. 금줄을 치고 숯과 고추를 매단다. 흰 버선본은 장을 더럽히는 귀신들을 가두어 줄 것이다. 잔설이 녹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잎 분분히 날리는 봄이다. 노란 산수유꽃 송화가루 바람 타고 날아든다. 날을 세지 않아도 장 가르기 할 때를 알 수 있다. 흩날리는 봄꽃들이, 볼을 쓰다듬는 햇살의 농도가 날을 알려준다. 간장과 된장을 갈라 정성스럽게 옹기에 담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이다. 이제 모든 것은 자연의 손에 달려 있다.


옹기는 숨을 쉬며 햇살을 끌어들인다. 간혹 송화가루 살포시 그 속으로 들어가 속살거리기도 한다. 햇살이 어루만지고 바람이 들고나고 해가 바뀌는 동안 옹기 속에서는 맛과 향이 깊어진다. 장맛이 어떨지는 자연만이 안다. 해와 공기와 미생물들만이 안다. 장은 그렇게 자연이 만들어낸다.





황토 파서 금토 놓고 삼 일 기도 바란 후에 이 장 저 장 다 담그니, 간장 빛은 짙어지고 된장 빛은 우려주소, 이 장 저 장 다 먹어도 꿀맛같이 달아주소. 일 년 하고도 열두 달에 독사배가 막아 주소, 영양 부정도 막아 주소, 찔레꽃은 만발해도 꽃가지 꽃은 피지 마소, 어히여루 지신아 장독지신 울리자, 꿀치자 꿀치자 이 장독에 꿀치자, 강원도 벌이 날아와 이 장독에 꿀치네, 꼬장은 매워야 지렁장은 짭아야, 막장은 달아야 된장은 누렇어사, 잡귀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동래 지신밟기」 중 ‘장독풀이’


빗방울 떨어진다. 싸한 흙냄새 코끝을 파고든다. 비 듣기 전 장 뚜껑 닫으라고 엄마가 일렀는데, 아이는 노는 데 정신 팔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혼쭐 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비에 젖는 것도 모르고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대문을 열자마자 장독대로 향한다. 다행히 누군가 뚜껑을 덮어 놓았다. 아이는 흙투성이 맨발로 항아리 밑둥치를 툭툭 차며 괜한 분풀이를 한다.

엄마는 왜 허구헌날 장독 뚜껑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는지, 반질반질 윤이 나는 항아리를 왜 자꾸만 닦아대는지, 새벽녘이면 물 한 그릇 떠 놓고 항아리 앞에 앉는지, 아이는 알 수가 없다. 아이에게 장독대는 그저 무료함을 달래주는 놀이터일 뿐인데.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찌푸린 얼굴, 웃는 얼굴, 덧니를 드러낸 얼굴, 볼을 부풀린 얼굴, 삐죽거리는 얼굴. 그 얼굴 뒤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지나가고 감나무 감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항아리 뚜껑 하나하나를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달큰한 간장, 고추씨 훌훌 뿌린 된장, 매큼한 고추장, 향도 색도 다양하다.


장독 순례를 마치면 항아리에 기대고 앉아 귀를 들이댄다. 독에서는 어떤 깊은 울림이 들려온다. 먼 곳에서 아이를 찾는 엄마 목소리 같기도 하고 깊은 숲 바람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까무룩이 잠이 들 때도 있다. 따뜻하게 데워진 항아리의 온기가 꼭 엄마 품 속 같다. 아랫목 차지한 청국장처럼 그리움이 발효되는 오후.






즙장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담가 열흘 정도 익혀 먹는 장. 유지로 봉하고 항아리를 진흙으로 발라 두엄 속에서 삭혀 먹었다.

청태장
청태콩을 시루에 쪄서 떡 모양으로 하고 콩잎을 이용해 발효시키는 장.

두부장
물기를 제거한 두부를 으깨어 주머니에 넣고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서 오래 묻어 두었다가, 꺼내 먹는 장으로 사찰음식의 하나.

비지장
날씨가 선선할 때 콩비지로 담가 먹는 장. 비지를 띄워 배추김치를 넣고 끓여 먹는 장으로 부드럽고 구수하다.

어육장
쇠고기 말린 것·생치·도미·전복 등을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메주로 간장 담그듯 소금물을 붓고 담그는 장.

지례장
‘지름장’이라고도 하는데 우선 지레 먹는 장이라는 의미다. 메주를 빻아 보통 김치 국물을 넣어 익히면 맛이 좋다.

나주집장
누룩을 띄워 가루를 낸 뒤 찐 찹쌀을 섞어 하룻밤 재운다. 여기에 가지 오이·고춧잎 등을 섞어 퇴비 속에 묻어 익힌다.

제주 조피장
조피잎을 잘게 썰어 된장에 버무려 오지그릇에 꼭꼭 눌러 담아 두었다가 이틀쯤 지나서 먹는다.

경상도 등겨장
시금장이라고도 하는데 보리 속겨를 쪄서 띄운 다음 쇠죽솥에서 하루 익혀 먹는다.
부안 찌엄장 고춧잎이나 김치 무를 넣고 짠지국물로 메주가루를 버무려 담는다.


독을 닦는다. 독을 닦으며 시름을 놓는다. 타박네 설움도, 울컥 울컥 솟는 화도 독을 훔치며 풀어낸다. 잘 숙성된 된장. 오래전 친정어머니는 머리가 깨져도 배가 아파도 된장을 발라주곤 했지. 된장을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살던 내 순박한 어머니. 벌에 쏘여 퉁퉁 부은 얼굴에 된장 바르던 기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찬밥에 푸성귀 조금 썰어 넣고 된장 넣어 쓱쓱 비벼 먹자. 물 오른 고추 몇 개만 있으면 금상첨화다. 뚝배기에 호박 넣고 두부 넣고 바글바글 된장찌개도 끓이자. 알알한 고추, 매운 고추장 듬뿍 찍어 베어 물면 속이 펑 뚫릴 테지.


장은 팔진(八鎭)의 주인이라 했다. 모든 음식의 으뜸이 장이거니와, 잘 담근 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다. 장 속에 박아 놓은 고추며 깻잎이며 콩잎이 얼마나 풍성하냐. 향긋한 산더덕, 잘 마른 굴비 장 속에 박아 놓았으니 귀한 손님 걱정 없다. 고추장 굴비 꺼내 짝짝 찢어 상에 올릴까, 찹쌀가루에 된장고추장 넣어 장떡 한 장 지져볼까. 봄날 입맛 돋우는 냉이에 모시조개 넣어 냉이 토장국 끓여도 좋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해지는 장항아리. 오래 묵을수록 깊어지는 장맛처럼, 둥글고 어진 항아리 쓰다듬으며 세월을 다독인다. 마음을 다독인다.




수진원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직접 키운 태광콩과 지하 200미터에서 퍼올린 암반수로 장을 만든다. 장독 근처에 심어진 산수유나무며 소나무에서는 봄마다 꽃가루를 날려 장맛을 돋운다. 물 좋고 경치 좋고 바람 햇살 좋은 수진원에서 익은 장은 그야말로 자연이 만든다. 된장은 3년, 간장은 5년 이상된 것만 판매한다. 봄날 수진에 가면 아무데고 주저앉아 쑥을 캘 수 있고, 숲내음을 맡을 수도 있다. 한켠에는 궁중요리연구가 황혜성씨의 장독대도 있다. 031-773-3747/www.suzinwon.com

나종년 농장
백운산 고로쇠 물로 담근 장을 판다. 고로쇠 물은 당분과 철분?망간�?�미네랄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키延?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활력을 주는 물로 알려져 있는 고로쇠 물로 장을 담그면 짠맛이 덜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한다. 061-762-3937

호산죽염식품
충북 괴산군 청안면 질마재 고갯길을 돌아 괴실마을에 가면 호산죽염된장집이 있다. 이집 된장 맛의 비결은 물맛 좋은 옻샘물과 죽염이다. 죽염을 넣어 된장을 만들면 장맛도 깊고 구수하면서 건강에도 좋단다. 043-832-1388/ www.ihosan.com

통도식품
통도사 서운암에서 전통 사찰장의 맥을 잇는다. 성파스님이 90년대 사찰식 장맛을 재현하여 일반인들에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영축산의 기운과 햇살 바람이 어우러져 빚어진 된장은 몇백 년을 이어온 맛이다. 055-383-8888/ www.seowoonam.co.kr

향적원
순창 전통고추장 제조 기능 보유자인 한봉순 씨의 전통 장집이다. 순창의 지하수와 부안산 천일염을 사용해 재래식 전통 제지기법으로 장을 담근다. 063-653-3997/www.shunchang.co.kr

옹고집 장집
호박보리된장, 버섯보리된장 등 독특한 된장을 만드는 집. 된장 뿐 아니라 돌게장도 담근다. 조선간장과 진간장을 섞어 장을 만드는데 특이하게 민들레가루가 들어간다. 민들레가루를 넣어 만든 간장게장은 지나치게 짜지 않고 특유의 비린내도 없다.
063-453-8877/www.ongojip.co.kr

큰기와집
반가 내림음식 전수자인 주인 한영용씨가 운영하는 전통 한정식집. 7년된 간장으로 만든 간장게장은 별미 중의 별미다.

별궁식당
냄새 안 나는 청국장을 개발했다고들 하지만 청국장은 단연 꾸릿한 냄새가 진미. 버섯,두부,호박 등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청국장은 코를 킁킁거리며 찾아들게 만든다. 02-736-2176

찹스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내걸고 만든 한국식 패밀리레스토랑 찹스에서는 청국장 가자미찜을 자체 개발했다. 각종 콩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청국장과 담백한 가자미 살이 잘 어울린다.
02-542-9800

시골밥상
팔당댐을 지나 정약용 묘로 가는 길에 있는, 그야말로 시골밥상집이다. 순박한 한상차림도 차림이지만 돌판에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내오는 장떡을 맛볼 수도 있다. 031-576-8355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 된장의 달인들』
글 이진랑 | 사진 이경우 | 지오북
음식칼럼리스트 이진랑 씨와 사진가인 남편 이경우 씨가 전통 장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일 년 반 동안 전통 장맛의 달인을 찾는 긴 여정을 떠났다. 장 만드는 달인들을 직접 만나 비법들을 엿보고 장의 종류, 된장 건강법, 장 문화와 풍속 등 장에 관련된 지식들을 수록했다.

『종가집 시어머니 장 담그는 법』
한복려·한복진 공저 | 둥지
궁중요리연구가 한복려·한복진 자매가 팔도의 전통장에서부터 현대 식생활에 맞는 장 담그기까지 자세하게 설명한 책. 그밖에 냉이토장국, 각종 장아찌, 홍합초 등의 레시피도 함께 실려 있다.

『몸에 좋은 된장 요리 65』
글 최승주 | 리스컴
토속 음식에서부터 퓨전요리까지 된장을 다양하게 응용한 요리를 보여준다. 된장소스 안심스테이크, 된장 샐러드 등 건강 요리가 군침을 돌게 한다.

출처 : Tong - ippuni33님의 김치... 장담그기통

출처 : Tong - ippuni33님의 김치... 장담그기통

출처 : 소르본느 서재
글쓴이 : 유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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