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

[스크랩] 귀환

걷는 즐거움 2007. 2. 13. 01:37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인가. 나의 발끝이 향하고 있는 곳은, 그리고 견디기 힘든 오욕과

칠정의 늪에서 한시도 헤어나지 못하고 구차한 삶을 영위해 가는 나의 육신. 그 육신을

안타깝게 지탱하며 바닥에 깔린 두발을 내려다 보는 흐린 시선. 그리고 발끝 아래 잠시

멈추어 선 시간들이 던지고 가는 물음. 이 세상은 과연 내게 무엇이던가.

  

 

 

 

 

 

 

빗물에 젖은 흙냄새가 비릿한 바다내음과 섞여 이국에서의 아침을 깨우고 있다.

광목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커튼을 젖히니 창밖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간밤에

무시무시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듬성듬성 꺾여 넘어진 야자수들과 태풍의 잔해로

널부러진 나뭇가지들, 그리고 이름모를 아열대 꽃들도 산산이 부서져 해풍에 흩날린다.

아직 하늘위는 짙은 먹빛의 구름들로 뒤덮여 있지만 구름이 조금씩 움직일때마다

검은 장막뒤에 버티고 있는 햇살도 가끔씩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리조트.

객실은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날려버릴 만큼 강한 태풍이

불어대던 지난밤은 참으로 무서웠다. 불가해한 바람은 그처럼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때론 마치 악마의 함성같은 연옥의 강렬함으로, 야생의 썩은 고기를 눈앞에 두고 몰려드는

하이에나의 으르렁거림으로, 혹은 죽음의 사신인듯 참으로 음침하게 내가 머물던 방으로

침입해 들어오던 바람소리. 나는 그처럼 낯선 바람은 결코 경험하지 못하였고 바람이 

가져다 주던 소름끼치는 두려움의 실체를 인정해야 했다. 생각보다 긴 여정에 지쳐버린

마치 물먹은 솜같던 나의 육신도, 피로감 가득하던 고단한 내 의식도 바람이 몰고 온 갖가지

소리에 밤새 깨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미묘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나는 그처럼 두려운

바람속에 던져진 자신의 마음안으로 지극한 평온이 찾아오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바위를 뚫을듯하던 벼락소리와  마치 양동이로 퍼붓는듯 지붕을 때리던 열대성 호우,

그리고 세상을 향해 따귀를 올려 부치듯 하던 집채만한 파도의 철썩거림에 깜짝 놀라곤 했지만

정전이 되어 칠흙같은 어둠속에 갇힌 방안에서 오히려 선명히 각인되어 오던 나의 실체에

대한 눈물겹도록 반가운 물음. 나는 무엇을 위해 삶을 살아 왔는가.

세상과 바꿀 만큼 진정한 사랑이었는가. 세속의 욕망에 육신을 던져버린 출세였는가.

나를 묶고 있던 모든것들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것은 무엇인가.

후에 들은 바로 8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그 태풍의 핵에 위치해 있으면서 어쩌면 자신도

죽음에 이를수도 있었을 그 시간에 나는 자신을 그토록 집착하게 만들던, 통제되지 않는 감각과

이성마저 바람속에 훨훨 날려버리고 이제 그만 마음의 변형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나는 그토록 복잡하며 단순한 인간이었다. 알을 깨고 두려운 세상에 갓나온 병아리

처럼 자신의 영혼이 마치 순수 이전의 상태, 무한한 우주의 공백속으로 돌아가는듯한 그 시간, 

나는 얼마나 행복한 느낌을 지녔던가.

어느 시점엔가 꿈결처럼 나는 얼핏 잠이 들었고 드디어 커튼밖으로 여명이 밝아왔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듯 나를 무섭게도 하고 설레게도 하던 소리의 함성도 사라져갔다.

 

 

    

 

 

 

   

지금 내가 서있는 리조트 객실아래 근사하게 펼쳐진 협곡옆으로 은빛의 호수가 고요히

모습을 드러내고 수면위로는 희미하게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그 너머엔 쪽빛의 바다가

천국의 비단길처럼 열려있다. 그 모습을 오래 내려보다가 담배를 한대 피워물며 나는 다시금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때로 세상이란 너무도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난다.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아열대 특유의 끈적이는 습한 날씨속에 이미 더위가 느껴지더니

이제 막 전기가 복구되었는지 에어컨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미니바에도 불이 들어와있다.

GO(gentle organizer)가 아침인사를 하기위해 객실을 방문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세상은 늘 이렇게 원점으로 회귀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눈을 뜨고 있든 잠을 자든

어떤 상태에서도 공통적인 자각이나 의식이 분명 나의 본질이련만 이처럼 자연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고난과 은총의 세례는 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난글을 살펴 보니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는데 사이버 세상과 문득

단절되었던 그시기는 현실세계에서의 한달 이상의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세상은 그럴것이다. 내가 지닌 의지와 감정 그리고 느낌들은 때론 몹시도 절박하지만

살면서 대부분 자기 합리화 속에 그런 내면의 소망들을 무시하게 된다. 그리고 안타까운

시간만이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냉엄한 현실속에 뚜렷이 대비되어 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어쩌면 사소하고 하찮게 생각되는 자신의 감정과 염원들.

그 작은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결코 내가 원하는 세상에 닿을수 없다.

나는 내게 남겨진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바라보고 채색하고 싶었고 이번에 그러지 못하면

손안에 꼭 잡힌 작은새처럼 질식하여 죽어버릴것 같았다. 그리하여 모든 일상을 접고 훌쩍

가방하나 매고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었다. 하루종일 순록의 잔디를 밟으며 굴곡진 슬로프

사이로 펼쳐진 과일나무와 관목, 꽃들의 아름다움이 마치 잘 가꾸어놓은 신들의 정원같던

그곳에서 나는 가능하다면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 길은 어쩌면 내게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던 길일수도 있었다.

주인이 아무말 없이 사라져 버린 빈집에 찾아와 주시고 안부를 남겨주신 모든 블로그 벗들에게

참으로 감사드리며 이제서야 旅行의 무사귀환을 보고드린다.

 

 

   

 

 

 

 

 

 

 

흐르는 曲 :  Go go blues / Crawlin' King Snake

 

 


 

출처 : 내게로가는 旅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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